[헌금현황] 우에다, 캠프 필요물품, 선교단체의 발자취
페이지 정보

본문
헌금 현황
한챈전도사님과 히스아크를 응원합니다 50,000원
박은광 100,000원
은광교회 조삼환 200,000원
은광교회 정진선 50,000원
이전 선교지 건축 건으로 우에다 헌금은 큰 기대함이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후원리스트 변경
캠프 준비물, 잔여금으로 전도지는 결정됩니다. 캠프가 먼저입니다. 전도지는 일단 취소합니다.
.
.
히스아크미션커뮤니티
저는 신학생들 비전을 묻지 않습니다. 할 것 없으면 "선교사요"
찬양으로 흥에 겨워 "목숨을 걸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자기 유익을 위함.
아웃리치가 여행이 되었다.
남녀가 눈이 맞아 모텔 잡는다.
현지인들 앞에서 스킨십은 우습다.
다음부터는 당신들 선교지가지 말고, 차비를 헌금으로 보내는 게 좋은 것입니다.
남녀간의 주파, 성적유혹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살다가 저도 덫을 경험했습니다.
한 곳에서 사역하면 마음이 통하고 가까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20대가 아닙니다. 심지어 리더입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않으면 상대가 삐뚤어질 것도
예상했지만 그래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단 둘이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자신을 높이지 마세요. 아무나 요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어느 때나 남녀 숙소를 오고갔지만 우에다에서 제 허락 없이 그러면
전원 다 한국으로 내보낼 것입니다.
.
.
[회상] 신학생들의 태만 일본 청소년들의 성실
제가 경험한 한국의 청년들은 아빠 엄마 우쭈쭈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낙심하며, 풍요의 축복은 저주가 됨을 인증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식사 대접을 위해 장을 봐온 어른들이 짐을 들어고 센터에 와도
누구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직통계시나 일삼는 최악의 인물들은
저 어린 현지 고등학생들이 자기 알바 비를 모아서
동생 옷을 사주고 부모에게 드림을 보고도 느끼는 점은 코딱지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를 우습게 생각하면 우월함만 있을 뿐입니다.
.
.
근면성실한 친구들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히스아크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예배를 올리지 않는 교회는 떠나세요. 그런 게으른 교회에 뭐하러 있습니까?
그걸 부정하는 청년들과도 반드시 교제하지 마세요. 세상적으로도 무식한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
사람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 쉽다.
당장 캄보디아를 같이 가던 교회조차 얼마나 저를 좋아했습니까? 하지만 엉뚱하게도 돌아와
나의 인스타그램에 놀러와 몰래 구경하다가 적군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로잔 부정, 자신들이 좋아하는 "주님의 시선", 레비스탕스, 이런 딴따라 곡을 지적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온누리에 있을 때 그랬습니다. 사람은 안 변합니다.
"하나님 붕어 빵을 팔까요 말까요?"
이런 멍청한 직통계시를 토해내고 믿는 수준은 무엇입니까? 감리, 침례에서 자주 발생하죠? 아직도 초등학생 공식으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나? 사역자가? 화끈 거리는 군요. 신은 차라리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좋겠군요.
나는 내가 온누리에 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지만 3명 남았습니다.
그와 중에 생각지도 않게 날 놀래킨 아기 엄마 한나~
통상 자매는 결혼하면 끝인데, 그들이 성도의 교제가 가능해 질 때는
부부관계가 금이가거나 권사직분을 받을 나이, 그제야 주변을 돌아 보는데 흐음 역시 순수.
인간 자체가 이익이 안 되면 복을 주지 않으면 결코 선행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피조물 중 최악입니다.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냥 품을 뿐입니다. 사람 자체는 간사하거든요.
사람의 역겨움이 최고조에 달한 때는 아신대였습니다.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하지만 의인이라는 역겨움, 똑똑하다는 역겨움, 성인과 청년들의 완악함 신학의 패역질.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제게 보내셨습니다.
거듭된 추천으로 만나니, 나는 아신대에 입학 그리고 노숙을 한 그날 받았던 말씀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18
"이 말씀을 만나고, 저는 깨닫습니다.
하영이가 천 명의 몫을 하겠구나?"
조하영 선교사, 현 진 선교사
기복이 없고 마음이 아파도 시키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친구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성실, 충성, 꾸준함 이것이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이 된 것입니다. 성경을 벗어나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드래곤 볼이 아닙니다. 감정에 충실한 친구들은 이를 절대 가질 수없습니다. 하영이 양평에서 구미까지 눈물을 쪼로록 흘리면서까지
가서 핀잔을 먹어도 섬김의 자리를 지킨 친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에게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하영이는 생활력도 강합니다. 처음 봐요. 그녀가 과거 어리숙한 일을 했을 지언정 이는 그들은 하영이 안에 감추어진 폭팔적인 씨앗을 못 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보석을 볼 눈도 없었고요. 지금도 하영이를 손가락질 했던 자는 그대로이겠지만 하영이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영이를 보내셨을까?
때문에 세상에서 소망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신학을 배우고 교만하지 말 것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말 것
교만이 너무 싫습니다. 역사가 주는 그 전통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프라이드가 너무 거슬립니다.
저는 패거리 문화를 경멸했습니다. 노회를 알아 보는 과정에서 조차 "누구 추천으로?"가 대단히 거슬렸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합동인지 통합인지 모릅니다. 관심 없어요. 그가 장신대를 나왔든, 총신을 나왔든 관심이 없고 저 사람이 찐인가? 가짜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신학에서 A+을 받은 것과 신앙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바른 신학은 성경을 그대로 믿게 하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처럼 말입니다. 때문에 저는 신학을 라이센스로 생각할 뿐입니다.
- 다음글2016년 온누리교회 네팔 고레다라 사역을 회상하면서 25.08.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